국보 제 287호 백제 금동대향로 그리고 탄생비밀 - 차이나는 클라스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배우는 역사
고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권오영교수로부터 백제시대의
국보인 백제 금동대향로에
대한 역사를 배워봅니다
능산리 고분군에 주차할 공간이
없어서 유물이 없어 보이는 장소에
주차장을 만들기로 하고
공사를 시작했는데
우연하게도 국보인
역대최고의 걸작이 발견되었습니다
진흙탕에서 발견된 유물
660년 당나라군에 의해서
사비백제가 함락되었을 때
누군가가 목숨을 바쳐서
파묻어 놓은 것으로 추정이 되는
국보
1993년 우연히 주차장 공사중에
발견하게 됩니다
약 1330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세기의 걸작
국보 제 287호
백제 금동대향로
백제의 예술혼을 집대성한
작품
받침은 생명의 근원인
바다를 상징하는 용
용의 입에서 피어오르는 연꽃
몸통은 만물의 탄생을
상징하는 연꽃
뚜껑은 백제인들이 상상했던
신선의 산악세계
꼭대기는 천상의 세계를
상징하는 봉황
백제인의 사상과 이상향이
담긴 백제 금동대향로
국보 백재 금동대향로가
탄생하게 된 계기
국보 제288호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 사리감
백제 금동대향로의 비밀을
풀어준 열쇠입니다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백제 창왕 13년 567년에
매형공주가 사리를
공양하였다”
위덕왕의 생전 이름은
“창”이었다고 합니다
매형공주는 창왕(위덕왕)의
누이입니다
567년은 성왕이 죽은지
13년 후입니다
사비백제를 건설한
성황의 큰 그림은
고구려에게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전략적인 파트너 신라와
함께 그 일을 해 냅니다
당시 신라의 왕은 진흥왕
성왕의 백제와 진흥왕의
신라가 협공하여 고구려로부터
한강유역을 되찾은 백제
신라는 중상류 일대를
백제는 하류 일대를 사이좋게
차지 했는데 그러나
백제를 급습한 신라
120년간 이어오던 나제
동맹이 파기가 되었습니다
바로 긴급회의를 소집한
백제의 조정
여기에서 젊은 패기로서
전쟁을 밀어 붙인 창
성왕의 지지로 결국
신라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창이 군대를 끌고가서
전쟁을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성과가 없이
길어진 전쟁이었습니다
전장의 아들을 돕기 위해서
군사 50명을 이끌고 간 성왕
사비를 떠나서 가고 있는데
그 길목에 이미 신라군이
매복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라 장군의 정체는
김유신의 할아버지 김무력
결국 성왕이 잡히고
지위가 낮은 자에게
성왕의 목을 베도록 지시하여
결국 목이 베인 성왕
성왕의 목은 경주로 가져가서
신라군의 전리품이 되어서
신라 경주 관청의 계단
아래에 묻히고
성왕의 몸만 백제로 돌려보낸 신라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군의 좌평 네명과
병사 2만 9천 6백 명의
목을 베었으며
돌아간 말이 한 마리도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겨우 목숨만 건친 창
죄책감에 왕위까지 포기하려
했으나 와신상담
고난을 참고 견디며
백제의 재건을 다짐했습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제를 안정시키고
이후 아버지를 기리기 위한
사찰 능사를 건설합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국보 중의 국보
백제 금동대향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