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5. 11:56 유용한 정보
문화 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 - 무한리필 샐러드 임백천의 뮤직살롱
무한리필 샐러드
임백천의 뮤직살롱
문화 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
1992년 3월 혜성처럼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과 함께 우리나라 가요계의
판도를 뒤바꾼 이들
서태지 신드롬을 일으키며
명실상부 문화대통령으로 등극합니다.
1집 발매와 함께 수많은 팬을
부여잡은 서태지와 아이들
MBC 특종 TV연예에서 진행자와
신인가수로 첫만남이 있었습니다.
진행자는 임백천 신인가수는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 15주년 기념음반
서태지와 이이들 첫무대에
완전히 매료된 10대들의
폭발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1992년 작 서태지 작사 작곡
충격적이고 신선한 리듬
혁명적인 댄스뮤직 난 알아요
데뷔와 동시에 방송 3사
순위프로그램을 석권했습니다.
가요계의 전설
그 시작이 되어준 노래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환상속의 그대
1992년 작 서태지 작사 작곡
팝 뮤직과 힙합에 기반을 둔
기존에 없던 전혀 새로운
음악 이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약 170만장 판매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사상 데뷔 앨범
판매량 1위 였습니다.
가요톱 10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환상속의 그대가 17주 연속1위였습니다.
기존 방송가의 관행을 깨고
1집 활동 후에 돌연 잠적을 합니다.
살인적인 스케줄 피로 해소와
2집 앨범 작업을 위한 휴식기를
선언한 것입니다.
최초로 시도한 컴백 문화를
확립시킨 주인공들입니다.
2집 발매 당일 앨범의 구매를 위해
번호표까지 등장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하여가
1993년 작 서태지 작사 작곡
힙합에 국악을 접목시켜
또 한번 색다른 시도에 성공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죽음의 늪
1993년 작 서태지 작사 작곡
마이클 잭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곡 죽음의 늪
서태지와 아이들 우리들만의 추억
1993년 작 서태지 작사 작곡
서태지가 팬들을 위해서
만든 노래입니다.
2집은 대한민국 최초 더블밀리언셀러
22만장 판매기록을 세웠습니다.
서태지는 중학교 3학년때
전교 537명 중에서 꼴찌엿습니다.
공부보다 음악에 관심이 컸던 소년
서태지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서
과감한 결정을 하는데
고등학교 자퇴를 합니다.
서태지의 첫 데뷔가 바로
시나위 밴드의 베이시스트입니다.
시나위는 록의 대부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이 이끄는 전설의 밴드입니다.
시나위 4집부터 베이스를 연주하고
드럼과 편곡을 담당했습니다
시나위의 베이시스트로
화려하게 데뷔한 서태지
시나위의 해체 이후에
댄스 그룹을 만들기 위해
랩과 컴퓨터 작곡에 몰두합니다.
아르바이트로 무궁화밴드를 만들어
활동을 하던 어느날
양현석을 만나게 되는 데
양현석과 듀엣을 결성하게 됩니다.
박남정과 프렌즈로 활동하던
이주노를 최종 멤버로 영입합니다.
이렇게 하여 3인조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전설의 시작이 됩니다.
가요계에서 막내가 리더를
하는 것도 희귀한 사례였습니다.
원래 팀명은 태지보이스였는데
음반을 배포하는 스탭이 영문으로 된
태지 보이스를 서태지와 아이들로 잘못
등록을 합니다.
서태지는 고가의 기타에
만화스티커붙이기등
심지어 만화 마니아여서
화장실에까지 만화책을 비치했다 합니다.
데뷔 초기에는 개그 프로그램에도
출연을 했었습니다.
KBS 한바탕 웃음으로에 출연한
신인시절 서태지와 아이들
1992년에는 오디오 광고에도
출연을 하고 광고의 이미지에
딱 맞는 노래와 이들의
바람에 날리는 연기까지
아이스크림 광고에도
출연을 했습니다.
인기 여배우 이아로와
동반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유쾌한 광고에 많이
출연했던
톱스타 서태지와 아이들
3집에 나오는 교실 이데아를
역방향으로 돌리면 사탄의
메시지가 나오는 루머
그래서 사탄의 숭배자라고 하는
말도 되지 않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웃어 넘겼지만 나중에는
방송에 나와서 해명을 하기에 이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최고 문제작
3집 교실 이데아
1994년 3집 앨범 발표와 함께
안티팬이 급증합니다.
서태지의 댄스음악에 열광했던
일부 팬들이 돌아섭니다.
1집 2집까지는 모든 세대가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노래였습니다.
3집은 교육제도를 비판하는 교실 이데아
통일 문제를 다룬 발해를 꿈꾸며
기성세대의 반감을 살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 이데아
1994년 서태지 작사 작곡
서태지와 아이들 발해를 꿈꾸며
1994년작 서태지 작사 작곡
통일의 염원을 담은 사회적
메시지로 이슈였습니다.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150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습니다.
서태지의 전매특허 패션
일명 상표패션
서태지와 아이들 2집
헤어브리지와 레게머리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치마 패션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스노보드 패션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 홈
1995년 작 서태지 작사 작곡
무대를 스키장으로 만드는
유니크한 패션 스타일
가출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일명 귀가 노래로 유명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필승
1995년 작 서태지 작사 작곡
대한민국 최초로 길거리
게릴라 콘서트를
뮤직비디오로 제작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대유감
1995년 작 서태지 작사 작곡
사전 심의에 반기를 들며
1996년 가사를 없앤 멜로디만
발표했습니다.
사전 심의제도를 폐지한
전설적인 노래 시대유감
1996년 사전 심의제도 폐지 이후에
원래 가사로 재발표해서 화제였습니다.
서태지는 음반 작업을 위한
자의적인 집돌이로 변신합니다.
음악에서 만큼은 완벽주의자로서
완성되기 전까지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합니다.
이미 발매가 된 음반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녹음을 강행합니다.
심지어 자연의 소리를 찾기 위해서
시골의 흉가에서 녹음까지 했다 합니다
서태지가 가장 아끼는 것은
팬들이 준 선물 1호 종이학입니다.
2007년 데뷔15주년 기념으로
종이가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서
푸드 트럭과 난로를 설치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소식에
골수팬들의 강력한 항의가 있습니다.
화려할 때 미련없이
떠나고 싶다고 돌연 은퇴를
선언합니다.
1996년 1월 서태지와 아이들
공식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1998년 6월 다시 새음반으로
컴백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아닌
서태지 솔로로 컴백
서태지 울트라맨이야
2000년 서태지 작사 작곡
2000년 음반 발매전 선주문만
100만장을 돌파했습니다.
서태지 모아이
2008년 서태지 작사 작곡
하루 판매량이 90만장으로
서태지가 밴드로 활동한
첫앨범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준 팬들에게
헌정하는 곡 모아이
2000년대 최고 앨범으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서태지 소격동
2014년 서태지 작사 작곡
9집에서 이례적으로 후배 가수
아이유에게 자신의 신곡을
부르게 하고 동시에 발매를 했습니다.
서태지의 고향 소격동
유년시절의 추억을 담은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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