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26. 12:02 유용한 정보
대한민국 포크 음악의 대모 양희은
무한리필 샐러드
임백천의 뮤직살롱
양희은 아침이슬
1971년 김민기 작사 작곡
대한민국 포크 음악의 주역
청년문화의 아이콘
대한민국 포크 음악의 대모
양희은
내 마음이 아플 때
내 의지가 힘을 잃었을 때
나를 어루만져준 그 노래
나를 일으켜준 노래
내 마음에 위로가 되는 노래
그리고 우리를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는 노래
인생의 깊은 맛을 노래하는 가수
양희은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습니다.
50년 가수 인생에 대한 훈장입니다.
양희은씨의 대학시절 별명이
라면과 회수권이었다 합니다.
친구들과 눈만 마주치면
라면하나만 사달라고 회수권을
한 장만달라고 했다는데
라면과 회수권은 가난 때문에
생긴 가슴 아픈 별명입니다.
육군 대령이셨던 아버지가
39세로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열심히 사시다가
보증을 잘 못 서서
갑자기 집안 사정이 어려워
지게 되었습니다.
집안 곳곳에 빨간 딱지가
붙게 되었다 합니다
가난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습니다.
하루는 동생이
그냥 걷고 싶어서 걷는 건 괜찮은데
돈이 없어서 집까지 걷는 건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 했답니다.
그래서 통기타를 들고 무작정
명동으로 향합니다.
그 당시 노래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직업으로 삼기에는
부족했던 시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사람이 바로
가수 송창식이었답니다.
찾아가서 노래를 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합니다.
그래서 송창식씨가 자신의
공연 시간에서 10분을 떼어줍니다.
그 당시 국립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이 7천원이었습니다.
오디션의 합격과 동시에
4만원을 가불까지 했습니다.
송창식씨는 누구에게 사람을
추천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는데
추천한 사람이 바로 실력자 양희은이었습니다.
대학교 졸업 때까지 업소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우연하게 방송국의 PD의
눈에 띄여 아침이슬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데뷔곡이 됩니다.
청춘의 낭만보다 가난의
아픔이 컸던 양희은
청춘을 만끽할 나이에
씁쓸한 인생을 쌓아갔던 20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목놓아 부르짖는 청춘의 낭만
양희은 세노야 세노야
1971년
20대 어린 청춘이 버티기에는
너무나 가혹했던 현실
유일한 돌파구가 되어 주었던 노래
시대를 상징하는 민중의 노래가
되어버린 데뷔곡 아침이슬
사회적 의도가 있은 것이 아니라
아침이슬이 아름다움을 표현한 곡입니다.
무대 위에서는 순수한 노래엿으나
시위 현장에서는 민중의 노래였습니다.
아침이슬이 데뷔곡이 된 이유는
김민기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찢어버린 악보 조각을 줍습니다.
그 악보가 바로 아침이슬인데
하마터면 발표가 되지 못할 뻔 했던
아침이슬
이 곡이 금지곡이 되었는데
1973년에 고운 노래상을 수상하고
1975년 금지곡이 되고
그 후에 건전가요에 포함이 됩니다.
2016년 11월 26일
광화문광장 촛불 집회현장
양희은씨는 지난 1970년대 정부에
대한 저항감이 느껴진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됬던 아침이슬과 상록수를
연달아 부르며 국민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강한 연대의식을 안겨주는
국민가요 아침이슬
3집 타이틀곡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금지곡 판정을 받았는데 이유는
왜 사랑이 이루어질수가 없느냐
너무 비관적이다고 해서
금지곡이 되엇다고 합니다.
대학가에서 유행하던 노래가
국민 히트곡으로 재탄생이
된 것입니다.
양희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1973년
기타 교본의 1번 연습곡으로
수록이 되어 있는 노래입니다.
양희은 가을편지
1971년 김민기 작곡
양희은 들길 따라서
1977년 양희은 작사
양희은 한사람
1974년
담당하지만 호소력이 있는 목소리로
감성을 건드리는 양희은표 명곡들입니다.
소녀가장으로서 19살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돈을 벌어야 했던 양희은
큰 병에 걸리게 되는데
난소암말기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됩니다.
30대에 찾아온 불치병
두 번에 걸쳐서 암수술을 받는데
포기하고 싶을 정도록 고통스러웠던
투병생활이었습니다.
투병당시 청계천에서 양희은의 앨범이
불티나게 팔렸다고 하는데
그래서 청계천에 가보니
불치병 판정을 홍보 수단으로 악용을
하고 있엇던 것입니다
그래서 따지자 억울하면 신곡을
발표하라고 했다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발표한 노래가
바로 하얀목련입니다.
다른 가수가 거절한 노래에
새롭게 가사를 붙인 하얀목련
투병시 친구에게 편지가 왔는데
사랑하는 친구 희은이에게
너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지인의
장례식에 갔다 왔다
봄비 내리는 공원에 목련이 지고
잇더라 너는 잘 견디고 있니
이런 내용이었다고 하는데
이편지를 읽고 꼭 살아서
노래하고 싶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담아서 만든 노래가
바로 하얀목련입니다.
양희은 하얀목련
1983년 양희은 작사
투병 당시 살아서 노래하고 싶은
간절함을 담은 애절한 가사입니다.
양희은표 잔잔한 포크 감성에
대중성이 더해진 노래 하얀 목련
하얀 목련의 인기에 힘입은
뒤늦게 주목을 받은 한계령
양희은의 최고 히트곡 한계령은
시인과 촌장 하덕규의 작품입니다.
가난 때문에 가수로 데뷔했고
불치병으로 탄생한 명곡입니다
50년 가수 인생에서
결핍과 아픔이 좋은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양희은 한계령
1985년 하덕규 작사 작곡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커를 한
양희은의 명곡중 하나입니다.
양희은 상록수
1978년 김민기 작사 작곡
아침이슬과 더불어 1970년대를
대표하는 민중의 노래 입니다.
양희은과 정인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사랑의 쓸쓸함을
가징 시리게 표현한 곡입니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리메이크로 화제가 된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정동하도 허스키한 목소리에
한층 더 고조된 애절함으로 노래를
했습니다.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 뜻밖의 만남
50년차 가수의 의미있는 도전
후배들이 만든 노래를 양희은씨가
직접 부르는 것입니다.
후배들이 양희은씨의 프로듀스가
되는 것입니다.
2014년부터 시작이 된
뜻밖의 만남 프로젝트
양희은과 이적의 꽃병
2014년 이적 작사 작곡
수채화 같이 아련한 감정을
흐크러지지 않게 표현한 곡입니다,
양희은과 이상순의 산책
2015년 이상순 작곡
양희은 특유의 연륜이 묻어나는
저음과 이상순의 어쿠스틱
기타연주의 환상적인 만남입니다.
양희은 with김규리 엄마가 딸에게
2015년 양희은 김창기 작사 김창기 작곡
양희은의 친동생인 양희경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양희은과 하동균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안정적인 라이브 실력으로
콘서트 여왕으로 등극
후배 가수와의 환상의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인 양희은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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