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19. 12:02 유용한 정보
청춘들의 축제 대학가요제 - 무한리필 샐러드
무한리필 샐러드
임백천의 뮤직살롱
청춘들의 축제 대학가요제
1977년 1회를 시작으로
대학 캠퍼스의 낭만을 노래
음악으로 대동단결하여 많은 젊은이들의
탈출구가 되었던 대학가요제입니다.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1988년 제 12회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곡
유열의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1986년 제10회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곡
대학가요제를 통하여 수많은
스타들이 배출이 되었습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대학가요제에
진출하여 환희와 감동 그리고 희열이
그대로 전달 되었습니다.
전설적인 대학 가요제의 시작은
1977년입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대학생들만
출전이 가능했고 창작곡으로만
경합을 벌이는 가요제였습니다.
포크와 정통트로트로 한정되어
있던 1970년대 음악
장르가 추가가 되면서
문화에 목마른 젊은이들의
해방구가 되었던 대학가요제입니다.
제1회 대학가요제 대상은
샌드 페블즈의 나어떻해였습니다.
대학가요제가 쭉 이어나갈수 있게
기폭제 역할을 한 명곡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록음악으로
평가가 되며 40년간 꾸준히
회자되는 명곡입니다.
밴드의 시작은 1960년대 말부터인데
신중현을 중심으로 다양한
록 그룹들이 활동을 했습니다.
샌드페블즈의 수상으로
스쿨밴드의 그룹사운드 전성기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샌드페블즈는 당시에 명문인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동아리밴드였습니다.
밴드에 대한 인식이 샌드 페블즈가
나오면서 좋아졌습니다.
1980년 불놀이야라는 노래로
타 가요제에 출전을 한 가수 홍서범
제3회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옥슨 80 불놀이야
남성 5인조 캠퍼스 밴드
1980년 제3회 젊은이의 가요제 금상 수상
단숨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인기 가수 대열에 오른 홍서범
서울대 출신의 천재 싱어송라이터
가수 이적 대학가요제를 출전하기
위해서 대학에 간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 외 가수 원미연을 포함하여
젊은이들의 꿈이었던 대학가요제
산울림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김창완씨 형제들
산울림 이전에 무이라는 이름으로
대학가요제에 출전을 했는데
당시에 예선1등이었으나
알고보니 졸업생이었던 김창완
그래서 자격이 박탈되어서
본선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드디어 1978년에 제2회
대학가요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엄청난 반응으로 전국 각지의
대학생들이 서울 경기 예선에
309명이 신청을 하였습니다.
제2회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가수 배철수
한국항공대학교 스쿨밴드 활주로
탈춤이라는 노래로 은상을 수상합니다.
출전 이후에 홍익대학교 스쿨밴드인
블랙테트라와 합병을 합니다.
그 이름이 바로 송골매입니다.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
1982년도 작품
한국항공대화 홍익대 밴드가 모인
전문 밴드입니다.
송골매 모여라 1990년
대상은 부산대학교 중창단
썰물의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수상 이후에 방송금지 처분을
받게 됩니다.
가사가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뒹굴며 노래해
라는 구절 때문이라네요.
1979년 중의 일화는
이세상에 깊은 꿈 있으니
아득한 사랑에 눈을 내리고
그 당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아는 명곡 중의 명곡
김학래 임철우의 내가
1979년 제3회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곡
1981년에 정식으로 데뷔하며 인기를 얻었습니다.
당시 대상이라고 호명을 했는데
나오지 않았다고
1970년대 시행했던 장발 단속과
여자들 미니스커트 길이 단속을 했던
시절입니다.
남자들의 장발 기준은 귀를 덮는
옆머리와 옷깃을 덮는 뒷머리
대상을 호명하자 뛰어 나가자
머리가 풀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기타를 챙기고 머리를 챙기는데
시간이 걸렸다 합니다
제2회 대학가요제부터
본격적인 전설의 시작이 됩니다.
대상 수상자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던 입상자가 있습니다.
바로 심수봉이었습니다.
창작곡인 그때 그 사람으로
제2회 대학가요제에 출전을 했습니다.
당당히 트로트로 도전장을
내민 신수봉
그리고 심수봉만큼 인기를 누렸던
대학가요제가 배출한 국민가수
바로 노사연 돌고 돌아 가는길
1978년 제2회 대학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관객을 압도하고 무대를
장악한 카리스마
성악을 전공해서 풍부한 성량과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승부를 했습니다.
노사연의 만남
1989년도 작품
대학가요제에서 쌓은 내곡을
만남으로 발산했습니다.
1989년 만남으로 골든 컵을
수상하며 국민가수로 등극합니다.
당시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사람들의 경쟁률은 880:1이
될 만큼 엄청난 경쟁률이었습니다.
등장과 퇴장을 포함한 1분만
공연을 하는데 무려 3일동안
예선을 치루었다 합니다.
임백천 고영선의 한마음
1978년 제2회 대학가요제 출전 노래
텔레비전에서 만든 것이
대학가요제이고
라디오에서 만든 것이
강변가요제입니다.
대학가요제 만큼 많은
스타를 배출한 강변가요제
대학가요제는 초반에는 대형체육관인
문화체육관에서 열렸는데
그 후 잠실체육관등에서 열리다가
18회부터는 고려대 캠퍼스를
시작으로 전국대학교를 돌면서
개최를 하였습니다.
강변가요제 역시 이름대로
청평, 가평, 춘천등의 강변 근처에서
열렸습니다.
강변가요제에서는 여성의
파워가 강했습니다.
박미경 민들레 홀씨되어
1985년 제6회 강변가요제 장려상 수상곡
서정적인 멜로디와 시원한 창법의
조합이 돋보인 곡입니다.
유미리 젊음의 노트
1986년 제7회 강변가요제 대상 수상곡
버클리 음대 출신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풀한 가창력
1988년도에 나온 이상은의 담다디
제9회 강변가요제 대상 수상곡
보이시한 매력과 춤 실력으로
화제였습니다.
강변가요제출신인 이선희
정규 앨범이 없이 가요톱10
5주 연속으로 1위를 했으며
1984년도에 kbs 방송가요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합니다.
그리고 mbc에서 인기 가요상,
신인상, 10대 가수상을 수상합니다.
최초 3관왕에 등극합니다.
4막 5장 j에게
1984년 제5회 강변가요제 대상 수상곡
이선희 임성균으로 구성이 된 혼성 듀엣입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 국민이
사랑하는 애창곡에 등극한
이선희의 j에게
탄생비화는 고등학교 때 예선을 보러
갔는데 어떤 무명 작곡가가 이곡이
마음에 안 드는지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합니다.
그 노래가 바로 J였다 합니다.
또다른 강변가요제 출신
주현미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6인조 밴드 진생라딕스출신입니다.
그리고 이무송은 83년 출전
어금니와 송곳니라는 팀명입니다.
1995년 육각수
금상을 수상했는데 출전곡인
흥보가 기가 막혀로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먼저 1위를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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