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23. 14:17 방송 교양
심수봉의 노래와 인생 - 무한리필 샐러드
여무한리필 샐러드
임백천의 뮤직살롱
죽도록 사랑하면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해
미워요
1988년 심수봉 작사 작곡노래
야속한 남자의 마음을 그린 노래입니다.
여성 1세대 싱어송라이터 심수봉
오랜 세월 한결같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
한의 정서를 제대로 담아낸
심수봉표 독보적 트로트
부르는 모든 곡이 명곡입니다.
구성진 노랫가락에 매료가 된 대중
지금까지도 싱어송라이터 대표주자로
꾸준히 사랑받는 국보급 가수
이제는 후배들이 닮고 싶어 하는
가수이자 리메이커하고 싶어지는
심수봉표 노래들
불후의 명곡 PD가 심수봉씨를
섭외하고 싶은데 되지 않아서
심수봉의 집까지 찾아가서 비나리를
2절까지 완창을 하고 섭외를 했다 합니다.
2002년 노영심 작사 작곡하고
이문세 노래의 내사랑 심수봉
내사랑 심수봉
“열여섯에 처음 날 울리던 노래
그땐 난 사실 좀 조숙했지만
온통 세상이 그 목소리처럼
참 묘한 느낌의 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
심수봉의 노래와 인생
매우 연주가 어려운 손봐 발을
동시에 사용하는 악기 드럼
가수 심수봉의 출발은 드러머입니다.
원래 공부도 잘했지만 어릴때부터
끼가 많았다고 하는데
1960대 당시에 미8군에서
아나운서를 했던 심수봉의 언니
언니의 권유로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미8군 무대에서 록 밴드인 논스톱에서
드러머로 활동을 했던 심수봉
반전의 매력인데 절도있는 동작으로
드럼과 하나가 되어서 드럼을
치는 심수봉씨의 모습입니다.
탁월한 박자감으로 한치의
오차가 없이 완벽한 연주를 합니다.
빠른 비트에 힘든 기색이 전혀 없는
평안한 모습의 드러머 심수봉
증조부 심팔록은 피리의 명인
할아버지 심정순은 판소리와 가야금의 명창
작은 아버지 심사건 인간문화재 소리꾼
막내 고모 심화영 승무인간문화재
아버지 심재덕 민요채집가이자 소리꾼
유치원 다닐 때 이미자의 노래 동백아가씨등
노래를 불러서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인기 스타로 등극했다 합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악보만 봐도 노래가
술술 나왔다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호텔에서 재즈 피아노
연주와 노래를 했습니다.
손님 중 유명한 분이 심수봉을 보게 됩니다.
그사람이 바로 가수 나훈아
호텔에서 나훈아의 곡을 노래한 심수봉
이것으로 인해서 인생이 180도
변하게 됩니다.
훗날 나훈아가 심수봉을 위해서 곡을
선물했는데 그 곡이 바로 여자이니까
심수봉의 여자이니까
1979년도 작
나훈아가 작사 작곡한 노래
처음으로 녹음한 노래가 바로
나훈아가 작사 작곡한 여자이니까
다음날 다시 심수봉을 찾아 왔는데
레코드사 사장과 다시 방문을
한 것입니다.
계약을 하게 되는데
50만원에 계약을 하게 됩니다.
당시 호텔에서 연주를 하고 한달
받은 돈이 5만원이라 합니다.
계약후에 녹음을 한 노래가 바로
여자이니까
레코드사에서 계약을 하기는 했는데
무언가 흥행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녹음은 마쳤지만 앨범의 발매를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앨범을 기대했던 만큼 낙심도
컸던 심수봉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대학가요제가 열리게 되어서
대학가요제를 선택하게 됩니다.
제 2회 대학가요제를 참가하게 되는데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
1978년도
제2회 대학가요제 입선한 노래입니다.
정통 트로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대학시절
포크와 록이 주를 이루던 당시
창작 트로트로 도전장을 내민 심수봉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스타에 등극했습니다.
당시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심수봉표 트로트의 힘
제2회 대학가요제 당시에
본명 심민경으로 출전을 했습니다.
가수 서유석씨가 심수봉의 이름인
심민경을 개명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명을 하게 되는데
수봉은 스님이 지어준 법명입니다.
지킬 수 봉우리 봉 도를 이루다는 뜻
당시 입선만 했는데
대상수상에 대한 확고함이 있었는데
대상이 아니어서 많이 울었다고 하네요.
모든 이들을 경악하게 만든
창작 트로트 그때 그사람
수상의 실패이유가 곡의 리듬이
대학가요제의 성격과
좀 맞지 않는다 그리고 너무 프로같다
이런 이유로 상을 받지 못했다 합니다.
그 당시 대학가요제에서는 입상만 했지만
이후에 화제가 되면서 인기몰이를 시작했습니다.
심수봉의 창작 트로트 그때 그사람
시대를 앞서간 진정한
1세대 싱어송라이터 심수봉
세월이 흘러서 전국민의 애창곡이
되어버린 그때 그사람
대학 가요제 출연 다음날
트렌치 코트를 입은 두 남자가
찾아 오게 됩니다.
지구레코드사 직원들이 와서
전속계약을 하자고 했답니다.
전속계약과 함께 보너스로
제미니승용차를 받게 됩니다..
신인으로서 파격적인 대우였고
TV나 라디오를 틀면 그때 그 사람
노래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사건이 일어납니다.
1979년 10월 26일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취조를 받고 군사재판까지
받게 되면서 정신병원에 감금까지
당하게 됩니다.
그 사건 이후로 더 이상 음악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방송금지처분후 오히려 이 사건을 통해서
활동은 하지 못했지만 엄청난 인기를
얻었습니다.
배우 유지인 주연의 1982년
영화 아낌없이 바쳤는데
남진, 나훈아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영화에 출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는데
재기를 꿈꾸며 영화 출연과 동시에
영화 주제곡도 직접 부른 심수봉
영화의 주제곡인 순자의 가을이
영부인의 이름과 같다고 해서
금지곡이 됩니다.
가수 방미가 이름을 바꾸어서
노래를 불렀는데 히트를 친 순자의 가을
영화 아낌없이 바쳤는데 주제곡으로
음반이 나왔던 심수봉표 순자의 가을
방미 올가을엔 사랑할 거야
1983년도
심수봉의 노래에 제목만 바꾸고
방미가 다시 부른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
전국민이 다아는 히트곡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1984년 방송 금지 조치 해제와 함께
제2의 심수봉 시대가 개막됩니다.
그 시작을 알리는 노래가 바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1984년)
노래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준
심수봉 불후의 히트곡입니다.
방송금지 처분으로 인한 공백기를
완벽하게 보상해 준 명곡입니다.
노래의 탄생비화는
심수봉이 꽃꽂이를 배웠는데
꽃꽂이 선생님의 남자 친구가
외항선원이었다고 합니다.
남자친구를 그리워하는 꽃꽂이
선생님을 위로하기 위해서
만든노래가 바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그런데 이 노래가 외설시비에
휘말리게 되는데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에서 여자를 두고
남자가 바람피우러 갔다고
금지곡이 됩니다.
심수봉을 일컬어 신이 내린
비음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MRI를 우연히 찍게 되었는데
코 옆이 비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철저한 두성으로 불러도
완벽한 비음이 가능한 것입니다.
1993년 라디오 DJ를 맡게 된
심수봉
담당 PD가 지금의 남편이라 하는데
처음에는 PD가 일적으로 잘해 주었던 걸
좋아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되었다는데
그렇게 탄생한 노래가 비나리라 합니다.
심수봉 비나리(1996)
남편을 향한 외사랑을 노래로
표현한 심수봉의 비나리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던 가사였는데
친구에게 들려 주었는데 부정적인
가사여서 바꾸라고 했다는데
하늘이여 저사람
영원히 사랑하게 해줘요라고
바꾸었는데도 잘 되지 않아서
사랑하는 사람앞에서 비나리를
여덟 번 부르고 결혼에 성공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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